프랑스 남동부에 자리한 리옹(Lyon)은 여행자들에게 뜻밖의 감동을 주는 도시입니다. 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큰 이 도시는 로마 유적부터 세련된 부티크까지, 고대와 현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매력을 자랑합니다. 리옹은 특히 미식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도 역사, 예술, 자연이 풍부하게 녹아 있는 곳입니다. 저는 여행자 입장에서 리옹을 여행하며 특히 인상 깊었던 세 곳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만약 리옹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아래 세 곳은 반드시 여행 일정에 넣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1. 뷰 리옹(Vieux Lyon), 시간을 거스르는 산책
리옹의 진짜 매력은 구시가지인 뷰 리옹(Vieux Lyon)에서 시작됩니다. 이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고, 프랑스에서 가장 잘 보존된 르네상스 거리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강 건너 포르비에르 언덕(Fourvière Hill) 아래에 자리한 이곳은 15세기부터 17세기 사이 건축된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사이를 좁고 구불구불한 자갈길이 연결하고 있습니다. 어디를 걷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싶어지는 중세 유럽의 감성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 특히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트라불(traboules)이라 불리는 비밀 통로들이 흥미롭습니다. 트라불은 과거 실크 직공들이 날씨나 외부 위험으로부터 제품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던 지름길인데, 건물과 건물을 관통하며 이어져 있는 구조로 현재는 일부만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습니다. 트라불을 찾는 재미는 마치 보물찾기와도 같아서 길을 걷다가 아무 표시도 없는 문을 밀어보면 갑자기 아름다운 중정이 펼쳐지곤 합니다. 골목 사이사이마다 이런 숨겨진 공간들이 많아 뷰 리옹은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 줍니다. 아침 일찍 빵집에서 갓 구운 팽 오 쇼콜라(Pain au Chocolat)와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코스 추천드립니다. 이른 시간에는 관광객이 많지 않아 지역 주민들의 느긋한 아침 일상을 함께 느낄 수 있으니 여행을 일상처럼 즐길 수 있답니다. 이후에는 언덕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며 푸르비에르 대성당(Basilique Notre-Dame de Fourvière)을 향해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대성당 내부는 황금빛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어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성당 앞 테라스에서는 리옹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리옹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조화롭게 형성되어 있는지, 여기서 보면 그 구조가 그대로 읽할 정도로 뻥 뚫린 전경을 자랑합니다. 하산할 때는 꼭 미니어처&시네마 박물관(Musée Miniature et Cinéma)에 들러보시길 추천합니다. 이 박물관은 헐리우드 영화 세트의 미니어처부터 프랑스 영화 특수효과 장비까지 전시되어 있어 영화와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꽤 긴 시간을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뷰 리옹은 도시의 역사와 예술, 삶이 오롯이 녹아 있는 살아 숨 쉬는 거리이자 리옹의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곳으로 꼭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2. 파르크 드 라 테트 도르, 도심 속에서 만나는 거대한 자연의 품
리옹 여행 중 가장 예상치 못했던, 그래서 가장 마음에 깊이 남을만한 장소를 꼽으라면 단연 파르크 드 라 테트 도르(Parc de la Tête d'Or)입니다. ‘황금 머리 공원’이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프랑스 내에서도 가장 큰 도시 공원 중 하나로, 무려 117헥타르에 달하는 방대한 면적을 자랑합니다. 도심 한복판에 이처럼 광활한 자연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데 막상 그 안에 들어서면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듭니다. 도시의 소음과 분주함이 마법처럼 사라지고 평화로운 나무의 향기와 새소리, 바람의 흐름만이 온몸을 감쌉니다. 공원은 크게 몇 개의 테마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역시 호수입니다. 이 호수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이지만 그 풍경은 매우 자연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잔잔한 수면 위로는 오리와 백조들이 유유히 떠다니고, 연인들이 손을 잡고 보트를 타며 데이트를 즐기는 곳이랍니다. 따뜻한 오후에 혼자 나무 벤치에 앉아 책 한 권과 함께 풍경을 감상하면 그 시간이 리옹 여행에서 가장 여유롭고 고요한 순간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또 하나 이 공원에서 감탄할 만한 부분은 장미 정원(Roseraie)으로 이곳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30,000송이 이상의 장미가 심어져 있으며,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색과 향기로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특히 5월 말에서 6월 초는 장미가 만개하는 시기로 그 시기에 방문하게 되면 꽃이 만발한 장미길을 걷는 호사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핑크, 붉은색, 노란색, 심지어 보라빛의 이국적인 품종까지 향기와 색채의 향연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사진 찍기에도 정말 좋은 스팟이 많아 인생샷을 건지고 싶은 여행자라면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이랍니다. 그리고 이 공원을 특별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무료 동물원(Zoo de Lyon)입니다. 일반적으로 유럽의 동물원 입장료가 꽤 높은 편인데, 이곳은 누구나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특히 인기 있는 장소입니다. 동물원 내부는 꽤 넓고 잘 관리되어 있으며, 사자, 얼룩말, 기린, 플라밍고, 다양한 원숭이 종까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동물과 눈을 마주치며 자연의 생명력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원 전체는 도보로도 충분히 둘러볼 수 있지만 자전거를 대여하거나 전기 스쿠터를 타고 돌아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나무가 길게 늘어선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마치 도시를 잠시 떠나 숲 속 별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랍니다. 인근 빵집에서 샌드위치와 간단한 음료를 사 와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소풍처럼 시간을 보낸다면 정말 최고의 힐링 타임이 될 것입니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여행 일정에 이렇게 자연 속에 앉아 느긋하게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시간일 것입니다. 파르크 드 라 테트 도르는 리옹 시민들의 일상과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며, 여행자에게는 도시의 리듬을 천천히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리옹에 머무는 동안 단 하루라도 여유가 있다면 반드시 이곳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3. 레 알 드 리옹 폴 보퀴즈, 프랑스 미식을 즐기다
리옹을 찾는 이유 중 하나가 단연 음식이라면, 그리고 프랑스의 미식 문화를 제대로 경험해보고 싶다면, 레알 드 리옹 폴 보퀴즈(Les Halles de Lyon Paul Bocuse)는 절대 빼놓아선 안 될 필수 코스입니다. 이 시장은 단순한 식자재 시장이 아닌 말 그대로 프랑스 미식의 중심이라 부를 수 있는 곳입니다. 리옹 출신이자 프랑스 미식계의 전설인 셰프 폴 보퀴즈(Paul Bocuse)의 이름을 딴 이 실내 시장은 그 이름만으로도 리옹 사람들이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장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코끝을 자극하는 고소한 버터 냄새, 숙성된 치즈의 진한 향, 굴과 바닷바람이 섞인 듯한 신선한 해산물의 냄새가 사방에서 퍼져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프랑스 식문화의 백과사전 같습니다. 전통 푸아그라, 트뤼플 오일, 다양한 수제 잼과 소시지, 프랑스 전역의 샤르퀴트리(Charcuterie)가 정성스럽게 진열되어 있어 눈으로만 봐도 이미 배가 불러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장에서 감명 깊은 점은 상인들의 자부심과 전문성으로, 만약 치즈를 구입한다면 각 치즈의 산지, 숙성 기간, 추천 와인까지 상세히 설명해주시는 걸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시장은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현지인들과 여행자가 교류하고, 미식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배우는 살아 있는 클래스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리옹의 대표 음식을 맛볼 수 있는데 그중 부드럽고 촉촉한 생선 무스인 크넬(Quenelle)은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음식입니다. 특히 랍스터 소스를 곁들인 크넬은 촉감이 마치 클라우드 같고 깊고 진한 풍미가 입안에 오래 남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식 소시지를 브리오슈에 감싸 구운 소시송 브리오슈(Saucisson Brioché)는 바삭하고 고소한 빵과 짭짤한 소시지가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디저트로는 리옹 지역 특산 디저트인 타르트 프랄린(Tarte Praline)을 추천하는데, 분홍색 설탕 아몬드가 가득 얹힌 이 파이는 겉보기엔 조금 과하게 달아 보이지만 놀랍게도 견과류의 고소함과 설탕의 바삭한 식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오히려 중독적인 맛이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시장의 하이라이트는 해산물 코너입니다. 광택이 나는 신선한 굴과 게, 새우들이 얼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자리에서 바로 생굴을 까서 레몬 몇 방울만 뿌려 먹을 수 있는 바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작은 바에 앉아 현지 화이트 와인 한 잔과 생굴을 맛보면 미세한 짠맛과 바다의 풍미가 입안에 가득 퍼지며 리옹이 진정 미식의 도시라는 생각이 절로 들것입니다. 레 알 드 리옹 폴 보퀴즈는 리옹이라는 도시의 정신과 문화, 프랑스 미식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가격이 다소 높은 편이지만, 한 입 한 입이 그 값을 충분히 하고도 남는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이곳에서 점심을 즐기고 포장용 치즈나 샤퀴트리를 구매한 후, 근처 공원이나 강변에서 피크닉을 해보시길 추천합니다. 그 자체가 하나의 로컬 스타일 여행이 되어줄 것입니다. 리옹의 미식 문화를 제대로 맛보고 싶다면 레 알 드 리옹 폴 보퀴즈는 단연코 최고의 선택입니다.
글을 마치며
리옹은 파리와 프랑스 남부를 연결하는 교통 요지로 스쳐 지나가는 도시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여행의 목적지가 될 만큼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고풍스러운 르네상스 거리를 따라 걷는 뷰 리옹(Vieux Lyon)의 시간 여행, 도심 속 거대한 자연을 품은 파르크 드 라 테트 도르(Parc de la Tête d'Or)의 여유로운 오후, 레 알 드 리옹 폴 보퀴즈(Les Halles de Lyon Paul Bocuse)에서 맛보는 정통 프렌치 미식은 단기간의 여행자라도 깊은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리옹을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일반적으로 봄(4월~6월)과 가을(9월~10월)입니다. 이 시기에는 날씨가 선선하고 쾌적해 도보 여행에 최적이며, 대규모 관광객이 몰리는 성수기를 피해 한적하게 도시를 즐길 수 있습니다. 특히 5월에는 공원이 꽃으로 가득 피고, 미식 시장에서는 제철 식재료가 넘쳐나 진짜 프랑스의 계절감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매년 12월 초에 열리는 빛의 축제(Fête des Lumières)기간도 리옹을 방문하기 좋은 특별한 시기입니다. 도시 전체가 환상적인 조명 예술로 물들며 전 세계 여행자들의 발길을 사로잡습니다. 프랑스를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리옹에 며칠 머물며 이곳이 얼마나 풍부하고 다채로운 매력을 지니고 있는 지 느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진짜 프랑스를 경험하고 싶다면, 리옹에서 그 여정을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